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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동영상을 하나 찍어두었다.
아빠가 "엄마"라고 장난스레 외치니, 엄마가 온 줄 알고 현관으로 달려가는 아들.
처음 볼 땐 웃겼고
두번 째 볼 땐 귀여웠고
세번 째 볼 땐 미안한 마음
그리고
엄마를 기억해줘서, 보고싶어 해줘서 고마운 마음
아들, 너의 매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해.
하지만 엄마 아빠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고 있어.
아빠는 너와 함께 하기 위해 잠깐 일을 쉬고 있고
엄마는 그러한 아빠와 너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어.
너를 더 많이 우리 품에서 키우고 싶어서.
너를 세상에 일찍 보내고 싶지 않아서.
나중에 이 1년을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엄마 아빠는 그렇게 생각해.
엄마 아빠 모두 일하면 더~ 많이 벌어서 더 많이 쓸 수 있겠지.
주안이가 좋아하는 것들도 더 많이 사줄 수 있고
하지만 지금
아껴 먹고, 아껴 쓰고, 아껴 살아야 겠지만
너를 우리가 더 많이 품고 있을 수 있다면,
너가 세상에 나갈 준비를 더 길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선택한 더 큰 행복이라는 것.
우리는 참 많은 계산을 했다.
'엄마가 일을 하지 않고 쭉 주안이를 본다면'
'아빠가 육아휴직을 내고 주안이를 본다면'
'엄마, 아빠가 일을 하고 주안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면'
단순히 세상의 계산기로 계산을 한다면 당연히
'엄마, 아빠가 일을 하고 주안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면'의 선택지가 가장 현명할 수 있었다.
매년 몇 천만원 이상을 저축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으니까.
그러면 정말 10년 안에는 지금 보다 훨씬 넓은 집을 사서 이사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더 넓은 집을 사는 것보다 주안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주안이가 아빠를 '집에 자러 오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퇴근하고 항상 주안이와 열심히 놀아주었고
주말엔 더더욱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했지만
어쨌든 항상 함께 하는 것은 엄마였고, 힘들때 찾는 건 엄마뿐이었다.
주안이에게 아빠는 '집에 종종 오는 사람'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었다.
아빠는 육아휴직을 내기로 했다.
그렇게 지금 주안이는 아빠와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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